동인천에 이사 온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인천의 끝, 국철을 타고 끝까지 오면 동인천이 나온다. 광역버스도 다니지 않는 곳이다.
내가 사는 곳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 단계에 접어들었고, 인구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오후 8시만 되면 인적이 드물어질 만큼 조용한 동네다.
조금 실없게 들릴 수 있지만 동인천으로 이사 온 건 한 중국집 때문이었다. 중화요리를 무척 좋아하는 나는 동인천 배다리의 한 중식당을 알게 됐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식당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동인천을 찾았다.
동인천을 알게 되면서 공간의 매력에도 빠지게 됐다. 고즈넉하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만큼 동네는 조용했고, 골목마다 오래된 매력이 넘쳤다.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곤 매번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가거나 100년이 넘은 성당과 교회를 둘러 보았다. 나의 동인천살이는 중국집과 배다리에서부터 시작됐다.
오래된 동네에는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특히 송창식의 이야기는 그의 음악을 오랫동안 흠모해 온 나에게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는 송창식이 무척이나 과소평가받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흔히 그를 가리켜 한국 포크의 전설이니 거장이니 하는 표현을 하지만 이는 의례적인 표현일 뿐 그가 이루어놓은 방대한 음악세계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를 포크 음악가로 규정짓는 것부터 한계가 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엔 포크와 록, 트로트, 재즈, 클래식 등 모든 음악이 다 들어있다고 밝혀왔다.
지난해 ‘송창식 송북’을 발표한 재즈 가수 말로는 가만히 그의 악보를 보고 있으면 음악에서 재즈가 발견된다고 했다. 그 연장에서 송창식의 대표곡 ‘담배가게 아가씨’는 포크가 아니라 우리 식의 펑크(funk)다.
‘담배가게 아가씨’가 더 특별해진 건 노래의 배경이 배다리란 사실을 알고부터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송창식은 생계를 위해 배다리에서 풀빵을 굽던 시절을 떠올리며 ‘담배가게 아가씨’를 만들었다. 앞집의 꼴뚜기 녀석과 만화가게 용팔이 녀석이 딱지를 맞은 ‘우리 동네’가 배다리인 것이다.
신흥동에 있는 절 해광사는 노래 ‘선운사’의 동기가 되었고, 방황하던 시절 여름마다 찾았다는 무의도는 그에게 수많은 영감을 제공했다.
온갖 ‘전설’과 ‘불후’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제는 그저 30년 전쯤 먼저 활동하고 어느 정도 인기를 얻었다면 어렵지 않게 전설이란 칭호를 획득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 남용 사이에서 진짜 전설의 존재는 흐릿해져 간다.
배다리에는 ‘불후의 명곡’인 ‘담배가게 아가씨’의 노래비조차 없다. 영화 ‘극한직업’과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라는 안내판이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송창식이 어린 시절 배다리의 헌책방에서 산 음악서적으로 이론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부당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여전히 그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기록되지 못하고 있다. 그와 그의 음악엔 더 많은 기록이 필요하다.
< 김학선 - 대중음악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