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려질 때가 있다.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 온 삶의 궤적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곱든 거칠든 얼굴에 각인된 인생 풍파의 색깔은 속일 수 없다.
미소가 머무는 평온하고 온화한 영혼이 숨 쉬는 한없이 맑고 평화로운 얼굴을 보면 그는 얼마나 조화롭고 겸손한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진다.
반대로 나이에 비해 주름이 깊게 파이고 잔뜩 화가 난 것처럼 찡그리고 어두운 얼굴을 보면 그의 삶 자체가 갈등과 탐욕과 고난으로 점철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모든 것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얼굴은 그 사람의 삶의 전반에 대한 바로메타로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준다.
주름이 가득한 인간의 얼굴만큼 그 사람이 겪은 다양한 사건들과 타자들을 상징하는 것도 없을 듯하다.
오랫동안 동고동락을 함께한 노부부의 얼굴이 신기할 정도로 닮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함께 마주한 희로애락이, 같이 머문 공간과 시간 속에서 동일한 마음으로 같은 길을 걸었기에 섭생과 생활방식의 작용은 비슷한 얼굴을 만든 일등공신 이었으리라…
어떤 곳에 마음을 집중하면 에너지는 그곳으로 모인다. 존재에 고통을 안겨주는 불평불만과 허구는 부정적인 생각을 만들어 마음속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흉측한 꼴로 나타나게 된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옹졸하고 비논리적으로 상대의 말에 딴지를 걸어 분위기를 흐려 놓으며 자신을 모르고 남 탓만 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사람과 기회가 나타나도 여전히 좋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세상을 장식한다. 넓은 아량과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삶의 순간순간을 기회로 여기고 소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생각이 마음을 만들고 마음이 삶을 만든다. 생각하는 대로 마음에 물이 들고, 곧 우리의 삶도 같은 색으로 물이 든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다.
1931년 뉴욕을 여행 중이던 윈스턴 처칠은 교차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심한 골절로 8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후 의식을 회복한 그는 경찰에게 이 사고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며 운전자가 피해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훗날 사고를 낸 운전자가 병원으로 찾아왔을 때, 처칠은 그가 실직한 상태임을 알고 그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기까지 했다.
훗날 처칠은 당시의 경험을 반추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자비롭다. 자신의 영역 안에 돌보지 않는 사물이란 없다. 오직 인간의 개입만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삶은 위태로운 것이지만 두려움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나아진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은 없다. 이겨낸 자만이 강인함과 우아함을 얻는다. 처칠의 이러한 자연 친화적 사상과 이타적 공감 지성은 위대한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에게 닥친 고통과 좌절은 일생의 한 부분에서 잠시 시험에 들게 하는 운명적 과정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오히려 감사하며 담담하게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상황은 전화위복이라는 복 중의 복으로 반전 되거나 오히려 더 좋아질 수 있다.
자연은 모든 사물과 현상을 더 좋아지게 치유하는 힘, 즉 ‘향상성’이 있다. 자신이 현재는 조금 손해 보더라도 양보하고 포용하면 자비로운 자연법칙은 그 대가로 행운과 행복을 그대에게 머물게 할 것이다. 따라서 당신의 마음과 얼굴에는 편안하고 밝은 아우라가 일게 될 것이다.
♡ 좋은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