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슴 한 마리가 나무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위에서 밤송이 하나가 사슴의 이마에 떨어졌다.
잠을 자다가 밤송이를 맞고 깜짝 놀란 사슴은 큰 일이 난줄 알고 벌떡 일어나 숲속으로 달려나갔다. 곁에서 있던 노루가 그 광경을 보고 큰 일이 난줄 알고 덩달아 뛰었다.
또 그것을 보고 토끼도 난리가 난 줄 알고 뛰었다. 그래서 숲 속에 있는 동물들은 모두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사자가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고 그들 앞을 가로 막고서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 지금 왜 그렇게 달려가고 있니?”
그들은 대답했다. “모르겠는데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니?”
“모르겠는데요”
그들은 왜 그렇게 숨가쁘게 달려가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디를 향해 가는 줄도 몰랐다. 남들이 뛰니까 덩달아 뛰어간 것이다.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요한 방에 앉아 휴식할 줄 모른데서 온다”고 말했다.
프랑스 사회철학자 ‘피에르 쌍소’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느림이란 게으름이 아니라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인생을 바로 보자는 의미”이다.
천천히 가야 더 잘 보인다. 바쁘면 시야가 좁아진다. 천천히 가다보면 보지 못했던 많은 것이 보이고 삶을 순간순간 즐길 수 있다.
토끼와 거북이, 빨리가는 토끼나 늦게 천천히 가는 거북이나 종착역은 같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랍비 레비가 길거리에서 달려가는 한 남자를 보고 물었다. “왜 그렇게 빨리 달려가는가?”
랍비가 묻자 그 사내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 “행운을 잡으려고요!”
이 말을 듣고 랍비가 이렇게 말했다. “어리석은 자일세 그려, 자네의 행운이 자네를 붙잡으려 뒤쫒고 있는데, 자네가 너무 빨리 달리고 있어.”
우리는 왜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것인가? 왜 그렇게 쫓기듯이 살아가는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사는가?
어디를 향해서 가는가 이제 한 번쯤은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질문 속에 해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