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熱國誌) (17)

O 연(燕), 위(魏)의 멸망 진왕은 형가의 암살 미수사건으로 크게 노하여 조나라에 주둔중인 왕전 장군에게 20만 군사를 추가로 보내 주면서 연나라를 쳐서 귀족 양반들을 씨도 없이 죽여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왕전이 30만 대군을 휘몰아쳐 연으로 쳐들어가니 연군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진군과의 전투에서 연전 연패를 거듭한 연왕은 성문을 굳게 잠그게 하고, 비상 대책회의를 열었다. "진군의 기세가 막강하여 우리로서는 대항할 방도가 없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열국지(熱國誌) (16)

O 자객 형가(荊軻)나라가 잘 되려면 충신이 많아야 한다. 진나라에는 명장들이 수 없이 많았는데 그들 모두가 충신이어서 진이 강대국이 된 것도 그들의 덕택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한 사람의 예외가 있었으니 그는 명장 번어기(樊於期) 장군이었다. 번어기 장군은 성품이 강직하기 이를 데 없는 대쪽같이 곧은 무장인지라 평소에도 <아무리 대왕의 명령이라 하여도 무조건 복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시비비를 가림없이 무조건 복종만 한다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나 대왕을 위해서나 결코...

열국지(熱國誌) (15)

O 한(韓), 조(趙)의 멸망 노애의 반란 사건이 마무리 되자 진왕은 승상 이사를 불러 물었다. “그동안 내정(內政)이 어수선하여 천하를 통일하려던 사업이 지연 되었소. 이제 다시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여야 하겠는데 어느 나라부터 정복하는 것이 좋을지 경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소이다.” 이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는데 “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국력이 가장 약한 한나라를 먼저 쳐서 손쉬운 싸움에서 승리를 하게 되면 군사들의 사기도 높일 수 있으리라 사료 되옵니다.”...

열국지(熱國誌) (14)

O 여불위와 노애의 몰락 노복을 천 명씩이나 거느리고 태후 주희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 둘과 호화로운 영화를 누리고 있는 노애는 시간이 흐를수록 엉뚱한 욕심이 무럭무럭 끓어 올랐다. 그것은 기회를 보아 진왕을 쫒아내고 자기 아들을 그 자리에 올려 앉히고 싶은 야심이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아들을 형제나 두었으니 이제는 현왕을 쫒아내고, 우리들의 아이를 왕으로 내세워야 할 게 아닌가?" 노애의 입에서 이런 말이 노골적으로 나오게 되자 주희는 몸을 떨며 말했다. "그건 안...

열국지(熱國誌) (13)

O 간부(姦夫) 노애열세 살에 등극한 소년 정(政)이 열 아홉 살이 되자, 승상을 제쳐 놓고 국정을 직접 관장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권력의 직접 행사의 농도는 점점 심해지더니 이제는 승상조차 턱으로 가리키며 지시하는 오만한 독재자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천하를 통일하려는 집념은 날이 갈수록 강렬해져서 진나라 백성들은 노약(老若)을 막론하고 자나깨나 군사 훈련으로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절대 군주도 천재지변(天災地變) 앞에서는 속수 무책인고로 진왕 6년에...

열국지(熱國誌) (12)

"권력의 달콤함 때문에 후일 신세를 망치기 쉽다." 이 무렵 진나라는 전국칠웅(戰國七雄) 가운데 영토가 제일 넓었다. 북방 경계는 멀리 호령, 곡구(谷口)에 이르렀고, 남쪽으로는 양자강 지류인 경수(涇水)와 황하 상류인 위수(渭水)를 둘러싼 곡창 지대와 서쪽으로는 서촉(西蜀)의 태산 준령이 가로 막고 있어 천연의 요새가 되어 주었고, 동쪽으로는 함곡관(函谷關)과 효산(肴山)이 있어서 천혜의 난공불락(難功不落)의 성채가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는 쉬워도...

열국지(熱國誌) (11)

○ 여불위의 골치 아픈 존재 화창한 어느 봄날 진도(秦都) 함양(咸陽)에서 50리 쯤 떨어진 야외 넓은 들에서는 아침부터 난데없는 진조대전(秦趙大戰)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조나라를 가상의 적으로 하는 군사 훈련 이었지만 치열한 공방전은 실전을 방불케 하였다. 진군의 총사령관은 열다섯 살의 소년 왕 자신이었고, 조군의 총사령관 역에는 진나라의 명장인 몽오 장군이었다. 마상의 소년왕은 장검을 하늘 높이 치켜 들고 가상의 적진으로 달려나가며 "적을 섬멸할 때는 바로 이때다!...

열국지(熱國誌) 10

열국지(熱國誌) 10

○ 여불위(呂不韋)의 고민 장양왕이 급서(急逝) 하고, 후일 천하를 통일하는 진시황(秦始皇), 소년 정이 열세 살로 왕위에 오르게 되자 승상인 여불위가 국정을 전담하게 되었다.(나의 아들이 왕이 되었고, 태후인 주희는 나의 정부이고 보니 이제 진나라는 사실상 나의 나라다!) 사람 장사에 뜻을 두고 큰일을 도모한 지 14년, 여불위는 마침내 진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남편이 죽고 나자 주희의 애욕은 더욱 강렬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는 남편의 눈을 남모르게...

열국지(熱國誌) 8

○ "지혜로운 사공자" 중에 한 사람 조나라 평원군(平原君) 조왕(趙王)은 진군에게 37개의 성을 빼앗긴 데다가 "명년 봄에 다시 쳐들어 오겠노라"는 통고까지 받고 나니 국가의 존망이 크게 걱정되었다. 그리하여 지혜로운 사공자로 불리는 현명한 아우인 <평원군>을 불러 상의한다. "진군이 명춘에 다시 쳐들어오겠다고 하고 돌아갔으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 평원군이 대답하는데, "우리의 힘 만으로는 진군을 당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똑같은...

열국지(熱國誌) 7

○ 자초의 등극과 여불위의 출세... (여씨 춘추 발간의 유래) 소양왕이 서거하자 태자 안국군이 왕위에 올랐다. 그를 효문왕(孝文王)이라 칭했다. 안국군이 등극함에 따라 자초가 태자로 책립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여불위로 보면 득세(得勢)의 길이 순간적으로 환하게 트인 셈이었다. 그러나 행운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새로 등극한 효문왕이 건강이 워낙 좋지 않아서 왕위에 오른지 불과 사흘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다. 불과 사흘 사이에 두 명의 왕이 잇달아 서거한 것이었다....

열국지(熱國誌) 9

by | Mar 4, 2020 | Uncategorized, 열국지 | 0 comments

○ 지혜로운 사공자, 신릉군(信陵君)

초나라와 군사 동맹을 체결하고 나자 이번에는 위나라와 군사 동맹을 서둘러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평원군은 위나라와의 교섭을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유인즉, 위왕의 아우인 지혜로운 사공자중에 한사람인 신릉군은 위왕의 아우인 동시에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데다가 평원군의 손아래 동서가 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국적은 다르지만, 평원군이 신릉군의 고매한 인격에 매혹되어 자기 처제와 결혼을 시켰던 것이다.

평원군이 신릉군을 찾아가 군사 동맹의 필요성을 강조하니 신릉군은 즉석에서 찬성하고, 위왕의 허락을 간단히 받아 내었다. 위왕은 군사 동맹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진비(晋鄙) 장군으로 하여금 국경 지대에 10만 대군을 주둔시켜 두었다가 진이 귀국을 침범 하기만 하면 즉각 출동시켜 귀국을 도와 드리도록 하겠소.”

그로써 평원군은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조나라로 돌아왔다.

그러면 신릉군이란 대체 어떤 인물이던가.

신릉군은 본시 병학가(兵學家)로서 식객 3천 여명을 거느리고 있는 <지혜로운 사공자>의 한 사람으로 백성들의 신망이 매우 두터웠다. 그는 누구에게나 겸손하였고, 어디엔가 현사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천리를 마다 않고 몸소 찾아가 자기 집으로 모셔오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대량성(大梁城)의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후생(侯生)이라는 70객 노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일부러 그를 찾아가 자기 집으로 모셔 오려고 애쓴 일이 있었다.

그러나 후생 노인은 정중하게 거절하며 말했다.

“다 죽게 된 내가 무슨 쓸모가 있다고 공자께서 나를 데려가려고 하시오. 찾아 주신 뜻은 고맙지만,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두시오.”

신릉군은 자기 집으로 같이 가 줄 것을 재삼 부탁했으나 후생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신릉군은 어쩔 수 없어 목로집에서 술이라도 한잔씩 나누고 헤어지려고 했는데 신릉군은 그 자리에서도 후생 노인을 깍듯이 상좌에 모셨다. 그러자 후생 노인은 신릉군의 겸허한 태도에 깊이 감동되어 술이 한잔 들어가자 이렇게 말을 했다.

“나 자신은 너무 늙어 공자를 따라갈 생각이 없지만 그 대신 좋은 사람 하나를 소개해 드릴 테니 그 사람을 만나 보는 것이 어떠하겠소?” 신릉군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는 모르오나 선생이 천거하시는 분이라면 꼭 찾아가 만나 뵙겠습니다. 그 어른은 지금 어디에 계시옵니까?”

“여기서 동쪽으로 10리쯤 가면 푸줏간이 하나 나올 것이오. 그 푸줏간에서 칼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주해(朱亥)라는 사람이 있소. 세상 사람들이 그를 몰라 주어서 칼잡이 노릇을 하고는 있지만 그 사람이야 말로 쓸 만한 인물일 것이오.”

푸줏간에서 칼잡이를 하고 있다면 백정(白丁)이라는 소리다. 백정이란 누구나 멸시하는 최하층 천민이다.

그러나 신릉군은 평소부터 직업에 대한 귀천 관념 같은 것은 추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귀족이라도 정신이 썩어빠져 있으면 그 사람이 바로 천민이요, 아무리 천민이라도 정신과 그에 따른 행동이 살아 있으면 그 사람이 바로 귀족이라고 생각해 오고 있었다.

그러기에 백정이라는 직업은 신릉군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후생 노인이 천거하는 사람이라면 예사 인물이 아닐 것 같아서 신릉군은 그 길로 주해라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동쪽으로 10리쯤 가니 과연 푸줏간이 나왔다. 40쯤 되어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 고기를 썰고 있었다.

“말씀 좀 물어 보겠습니다. 이 곳에 혹시 주해라는 분이 계십니까?” “내가 주해요. 무슨 일로 나를 찾아 오셨소?”

주해의 대답은 퉁명스럽기 짝이 없었다. 자기를 찾아 온 손님을 마치 발길로 차 갈기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주해의 인상은 무척 순박하게 느껴져서 신릉군은 웃음조차 지어 보이며 “실은 후생 노인의 소개로 선생을 일부러 찾아 온 것입니다.” 하고 말을 하며 자기 소개를 자세히 하면서 자기 집으로 가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주해는 코방귀만 뀔 뿐 상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후생 노인이 망령이 드신 모양이구려. 내가 미쳤다고 당신을 따라가오? 그렇게나 할 일이 없거든 집에 돌아가 낮잠이나 자시오. 나는 바쁜 사람이오.” 하며 애시당초 접근을 못 하게 하는 것이었다. 신릉군은 어쩔 수 없이 코방귀만 맞고 돌아왔다.

그런데 웬일인지 주해라는 인물에 이상한 매력이 느껴져서 신릉군은 그 후에도 4,5차례 찾아 갔었지만 주해는 번번히 퉁명스럽게 내쏘더니 나중에는 아에 묻는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후의 일이었다.

진나라 장양왕은 위나라가 조나라와 군사 동맹을 맺고, 자기네 국경 지대에 위군을 10만 명이나 주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분노하면서 위왕에게 다음과 같은 무시무시한 협박장을 보내왔다.

“우리는 머지않아 군사를 일으켜 조도(趙都), 한단성을 점령하려 하는데, 당신네가 조를 돕기 위해 우리의 국경에 10만 대군을 주둔시켜 두고 있다고 하니 만약 당신네가 조를 돕는다면 우리는 방향을 돌려 당신네 부터 정벌할 것이오. 그런 줄 알고, 망하지 않으려면 군사 행동을 일체 삼가시오.” 진나라 장양왕의 협박장을 받은 위왕은 큰 걱정을 하였다.

이에 신릉군은, “진은 육국(六國)을 송두리째 말아먹을 생각으로 우선 조를 정벌하고, 그 다음에는 우리를 정벌하려는 각개 격파(各個擊破)의 전법을 쓰고 있는 것이옵니다. 진은 예의도 신의도 없는 오랑캐 족속들이온데 우리가 그들의 손에 들어가면 어찌 생명인들 유지할 수 있으오리까! 그러므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조를 비롯하여 한(韓), 연(燕) 등 모든 국가들과 힘을 합하여 진에 대항하여야 하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위왕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 “하나하나의 힘은 약할지 모르오나 여섯 나라가 힘을 합하면 진나라를 멸망시키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옵니다. 이미 군사 동맹까지 맺은 이마당에 그것을 배신한다면 국가간의 신의를 어떻게 유지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조나라를 도우는데 손해가 있게 되더라도 우리는 내일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조나라와의 군사 동맹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내일은 내일 걱정을 하여도 될 일이고 당장 오늘 멸망을 자초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위왕은 끝끝내 조나라와의 군사 동맹을 배신할 결심이었다.

신릉군은 안타깝고 괴롭기 짝이 없는 마음으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니 마침 그때 조나라에서 급사(急使)가 평원군의 편지를 가지고 달려왔다.

“나는 신릉군을 신의 있는 사람인 줄로 믿고 처제와 결혼까지 시켰던 것이오. 우리는 지금 진군에게 도성이 함락될 지경인데 당신네는 군사 동맹까지 맺어 놓고도 우리를 도와줄 생각을 안 하고 있으니 정의의 지사로 자처해 오던 신릉군이 이렇게까지 배신을 할 줄 몰랐소. 만약 우리가 귀국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이대로 망해 버린다면 다음번에는 당신네도 우리와 똑같은 운명이 되고 말 것이니 애초에 신의를 잊지 말고, 지원군을 속히 보내주기 바라오. 마지막 부탁이오.” 신릉군은 이 편지를 받아 보고 나서는 도저히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식객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비장한 각오로 말했다. “대왕께서는 조나라와의 군사 동맹까지 맺어 놓고도 조의 위급함을 구해 주려고 하시지 않으니 우리들 자신이라도 들고 일어나 조를 도와주기로 하는 것이 어떠하겠소.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것이 나의 본질이거늘 뜻이 있는 분은 나와 행동을 같이해 주시기 바라오.”

그러자 3천에 이르는 식객 모두가 하나같이 주먹을 움켜 쥐며 비장하게 외친다. “공자께서 가시는 길이라면 저희들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행동을 같이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3천여 명의 식객들은 맨주먹으로 수백여 대의 수레에 나눠 타고 조나라로 떠나려고 하는데 별안간 후생 노인이 나타나더니 손을 높이 들어 출발을 막으며 말한다.

“공자께서는 출발을 멈추시고 소생의 말씀을 잠깐만 들어주시옵소서.” 신릉군은 초조한 마음으로 후생 노인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지금 갈 길이 바쁜데, 선생은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아무리 바쁘셔도 제 말씀은 꼭 들으셔야 합니다. 공자께서는 지금 3천 명이나 되는 선비들을 몰고 나가 맨주먹으로 진군과 싸우려고 하시는데 그것은 마치 호랑이 굴에 맨 몸으로 뛰어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

“그렇다고 군사 동맹을 배신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오.” “물론 군사 동맹은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국경에 주둔중인 진비 장군의 10만 군사를 공자께서 직접 물려받아 가지고 싸우셔야 합니다.”

“진비 장군이 나에게 군사를 물려줄 리가 없지 않소?” “대왕께서 가지고 계시는 병부(兵符)를 가지고 나가시면 됩니다. 대왕께서는 그 병부를 침전에 보관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하니 그 병부를 훔쳐 가지고서라도 진비 장군의 군사를 물려받도록 하시옵소서.” 신릉군은 후생 노인의 말을 듣자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참으로 좋은 방책을 말씀하셨소이다. 그러나 대왕께서 침전에 숨겨 두신 병부를 무슨 재주로 훔쳐낼 수가 있겠소이까?”

“대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후궁 여희(如姬)는 그것을 쉽게 훔쳐낼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공자께서 일찍이 여희 후궁의 부친의 원수를 갚아 드린 일이 계셨기 때문에 공자께서 직접 부탁하시면 여희 후궁은 두말 없이 병부를 훔쳐낼 것이옵니다.”

신릉군이 후생 노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럴 성싶었다. 여희 후궁은 일찍이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에게 원수를 갚지 못해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것을 알고, 신릉군이 의협심을 일으켜 원수를 갚게 해 준 일이 있었던 것이었다. 신릉군이 여희 후궁을 만나 부탁하니 여희는 그날 밤으로 병부를 훔쳐내 왔다. 신릉군은 크게 기뻐하며 병부를 가지고 진비 장군의 10만 대군 주둔지로 달려 나가려 하였다.

그러자 후생 노인이 옷소매를 움켜잡으며 다시 말했다. “장수가 전쟁터에 나가 있을 때에는 사정 여하에 따라서는 왕명에 복종하지 않아도 무방한 경우가 있사옵니다. 따라서 공자께서 진비 장군에게 병부를 내보이셔도 진비 장군이 공자에게 군사를 넘겨 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옵니다. 사태가 그렇게 되면 부득이 진비 장군을 죽여 없앨 수 밖에 없겠으니 그런 경우를 대비하여 푸줏간에 주해(朱亥)라는 친구를 꼭 데리고 나가시옵소서.”

“그 사람이 나를 따라가 주겠습니까?” “공자께서 직접 찾아가 사정을 말씀하시면 반드시 따라 나설 것이옵니다.”

신릉군은 후생 노인의 말을 반신 반의하면서도 부랴부랴 푸줏간으로 주해를 찾아갔다.

주해는 마침 푸줏간에 있었다. 그러나 주해는 신릉군의 얼굴을 보자마자 여전히 퉁명스런 어조로 “참새가 방앗간에 드나들듯 오늘은 왜 오셨소?” 하고 대뜸 쏘아붙인다.

신릉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찾아오게 된 경위를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주해는 신릉군의 설명을 묵묵히 듣고 나더니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내던지고 옷을 갈아 입으며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일로 오셨다면 같이 가십시다. 지금 곧 떠납시다.” 의(義)를 위해서는 주저함이 없는 주해였다.

주해와 함께 길을 떠나려니까 후생 노인이 전송을 따라 나선다. “빨리 가야 하겠으니 선생은 그만 돌아가십시오.” 후생 노인에게 작별을 고하는 신릉군의 눈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후생 노인이 그 눈물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공자께서는 죽음이 두려워 눈물을 흘리십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눈물이 솟아 납니다.”

“그 두 가지 이유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첫째는 대왕의 뜻을 거역하는 불충(不忠) 때문이고, 둘째는 국가의 공로가 많은 진비 장군을 죽게 할 수도 있게 된 슬픔 때문입니다.”

후생 노인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실로 고마우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충성에도 대충(大忠)이 있고, 소충(小忠)이 있는 법이옵니다. 대충을 위한 소충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후일, 대왕께서 공자의 높으신 뜻을 이해해 주실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안심하고 길을 떠나시옵소서.”

그리고 10리까지 따라 나오다가 최후의 작별 인사를 고한다. “소생도 공자를 따라가고 싶사오나 너무 늙어서 아무 쓸모가 없겠기에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나 공자를 따르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사와 공자께서 진비 장군을 살해하고 군사를 넘겨 받으셨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저는 공자의 성공을 비는 마음에서 그날로 목숨을 끊어 버리겠습니다.” 후생 노인은 그 후, 자기가 약속한 대로 자살을 하였다.

신릉군은 부랴부랴 진비 장군 주둔지로 달려가 장군에게 병부를 내보이며 군대를 물려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진비 장군은 군대를 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의 국경을 수비하는 것은 대왕께서 나에게 부과하신 거룩한 책무요. 그런데 공자께서는 조서(詔書)도 한장 없이 병부 한 조각만 가지고 오셔서 다짜고짜로 군사를 맡겨 달라고 하시니 제가 그 말씀을 어떻게 믿고 군대를 맡겨 드리겠습니까?” 말인즉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주해는 그 말을 듣고 나더니 몸 속에 숨겨 두었던 40근짜리 철퇴를 꺼내어 진비 장군을 일격에 쳐죽여 버렸다.

신릉군은 진비 장군을 살해하고 10만 대군의 사령관으로 취임하자 모든 군사에게 다음과 같은 포고문을 내렸다. “너희들 중에 부자가 같이 나온 경우,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고, 형제가 같이 나온 사람이 있거든 형은 돌아가고 아우는 남으라. 그리고 외아들인 사람도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도록 하여라.”

이렇게 민심을 돌려 놓으니 10만 군사가 8만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남은 8만의 군사들은 새로 지휘관에 오른 신릉군의 자애로운 온정에 감동되어 사기가 크게 양양 되었다.

그 무렵 진군은 조도(趙都)인 한단성을 겹겹이 에워싸고 성안으로 화살과 돌 등으로 우박이 쏟아 듯 공격을 퍼부어서 한단성의 함락은 경각에 달려 있었다.

신릉군이 진군의 후방을 전격적으로 기습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후방의 대비가 소홀했던 진군은 여지없이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많은 군사를 잃고 패주하고 말았다.

신릉군은 약속대로 8만의 군사를 이끌고 나타나 진군을 철저히 때려부수고 커다란 개가를 올리게 되었다.

조왕은 신릉군과 그의 군사들을 성안으로 정중히 맞아들이며 말했다. “공자의 도움이 없으셨던들 우리는 지금쯤 진군의 발굽에 짓밟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평원군도 신릉군의 손을 마주잡고 눈물로 감사한다.

진군이 격퇴되고 난 후, 신릉군은 데리고 온 군사들을 고국인 위나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신릉군은 그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왕명을 사칭하고 대장군 진비를 살해한 후, 군사를 무단으로 조나라로 몰고 왔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라도 고국에 돌아 갈 형편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을 알아차린 조왕은 신릉군에게 5개 성시(城市)의 영주로 봉하여 생활을 보장해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신릉군을 따라온 식객 하나가 이렇게 간한다.

“무릇, 모든 일에는 잊어야 할 일과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공자께서 남에게 베푼 덕은 하루속히 잊어버리셔야 할 일이옵고, 대왕의 뜻을 거역하여 진비 장군을 살해하고 군사를 빼앗아 왔던 일은 결코 잊어버리셔서는 안 될 일이옵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잊어야 할 일에 대한 공로로 5개 성시에 영주가 되신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 되옵니다.”

신릉군은 그 말에서 크게 깨달은 바 있어 영주로 취임할 것을 끝까지 사양하고 오로지 병학(兵學)에만 몰두하여 몇 해가 지난 후, <위공자 병법(魏公子兵法)>이라는 훌륭한 병서를 저술하였다.

한편, 진군은 신릉군의 참전으로 여지없이 참패하고 돌아가자 신릉군을 없애 버릴 생각에서 위나라에 첩자를 밀파하여 갖은 유언 비어로 신릉군을 음해하기 시작하였다.

<신릉군은 위왕을 내쫒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지금 조나라에 머물러 있으면서 위의 제후들과 긴밀이 내통하며 기회를 옅보는 중이다>

위왕은 그런 소문이 귀에 들어오자 크게 노하며<역적 신릉군과 내통하는 자가 있으면 삼족을 멸함과 동시에, 그를 잡아 오거나 죽여 없애는 자에게는 천만금을 주겠다>는 방문(榜文) 까지 써붙였다.

신릉군은 멀리서 그 소식을 전해 듣고 괴로운 심회를 금할 길이 없어 날마다 술로 보내고 있었다.

한편, 진나라 진양왕은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 가 있던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서 조를 치는 것을 평생의 숙원처럼 여기고 두 번째로 정벌군을 출정시킨 것인데 난데없는 위군의 기습으로 참패를 당한 군사들이 돌아오자 이번만은 위나라에 대한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즉시 승상 여불위를 비롯한 모든 장수들을 한자리에 불러 말했다. “우리가 조를 치고 있는데 사전에 경고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위가 후방에서 우리를 기습해 온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오. 군사 20만을 줄테니 누가 나가서 위를 격파할 것인가?”

대장 몽오(蒙鰲)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륀다. “신이 위를 격파하여 대왕의 진노를 풀어드리겠나이다.” 몽오는 그날로 20만 대군을 이끌고 위의 도성인 대량성(大梁城) 30리 밖에 진영을 구축하고 일거에 쳐들어 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위의 중신들은 크게 놀라 왕에게 고했다. “적장 몽오가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30리 밖에 와 있으니 군사를 속히 일으켜 적을 격퇴시켜 버려야 하겠습니다.”

위왕은 대경 실색하며 위공(僞公), 가공(假公)의 두 장수를 불러 명했다. “그대들에게 군사 각 5만 씩을 줄테니 좌.우 장군이 되어 적을 협공하도록 하시오.”

그러나 위공과 가공은 몽오 장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각 10여 합씩 싸워 보다가 급히 쫒겨 돌아와 위왕에게 고했다.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당해 낼 길이 없사오니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새로운 계책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위왕은 한숨을 쉬며 탄식한다.

“아아~ 나라를 지켜 줄 장수가 한 명도 없으니 이를 어찌했으면 좋단 말이오! ” 그러자 위공과 가공이 모두 품하는데 “나라를 구출할 능력을 가진 분은 지금 조나라에 가 계신 신릉군 밖에 없사옵니다. 그 어른이 진비 장군을 죽이고 군사를 빼앗아 간 것은 조나라와 맺은 군사동맹을 지키기 위한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여겨지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대왕께서 친서를 보내시어 귀국을 허락하신다면 신릉군은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기꺼이 돌아오실 것이옵니다.”

위왕은 사정이 워낙 다급한지라 신릉군 앞으로 편지를 써주면서 말한다. “그대들은 이 편지를 직접 신릉군에게 전달하고 급히 데려오도록 힘써 보시오.” 두 사람이 위왕의 친서를 가지고 조나라에 있는 신릉군을 찾아갔다.

신릉군은 왕의 친서를 읽어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득이 진비 장군을 죽이고 군사를 빼앗아 왔던 사람이오. 그러나 대왕께서 나를 역적으로 몰아 나의 목에 천만금의 상금까지 걸어 놓으셨다고 하니 내가 돌아가 본들 어찌 무사할 수가 있겠소.” 신릉군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걱정이었다.

이렇게 신릉군이 귀국을 거절할 기색을 보이자 모원(毛元), 설의(薛義) 두 식객은 즉석에서 이렇게 간했다.

“공자께서 오늘날 만인에게 추앙을 받으시는 것은 국가에 충성하고 의를 명예롭게 여기셨기 때문이옵니다. 그런데 이제, 진군이 무차별로 공격하여 우리의 도성을 점령하고, 종묘 사직을 불살라 버린다면 공자는 무슨 면목으로 세상에 얼굴을 들고 다니실 수가 있으오리까. 그러니 빨리 귀국하셔서 나라를 구하셔야 합니다.” 신릉군은 그 충고에서 자신의 불찰을 깨닫고 부랴부랴 귀국길에 올랐다.

그리하여 위왕 앞에 엎드려 고한다. “신은 백 번을 죽어 마땅한 죄를 범했사온데 대왕께서는 지친(至親)의 정으로 용서를 내려 주셔서 홍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제 신은 제후들과 힘을 합하여 적을 기필코 격파해 버리고 말겠습니다.”

위왕은 아우의 손을 눈물로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현제(賢弟)를 돌아오지 못하게 한 것은 나의 불명(不明) 때문이었소. 오늘로서 경을 상장군에 임명하니 적을 무찔러 나라를 구해 주기 바라오.”

신릉군은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어전을 물러나오자 곧 초(楚), 연(燕), 한(韓), 제(齊), 조(趙) 등 다섯 나라에 사신을 급파하여 육국 연맹(六國聯盟)으로 진에게 대항할 것을 호소하였다.

<지혜로운 사공자>의 한 사람인 신릉군은 평소에 모든 나라에 신망이 두터웠던 관계로 다섯 나라에서는 각각 지원군 5만 씩을 보내왔다. 그리고 그들은 사방 팔방에서 대량성을 둘러 싸고 있는 진군을 공격했다. 수세에 몰린 진군 대장 몽오가 죽기를 각오하고 마주 달려나와 싸우는데 그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일진 일퇴를 거듭하는 싸움이 길어지자 연합군 총사령관의 직책을 띠고 진군과 마주 싸우던 신릉군은 한 계책을 내어 젊은 병사 하나를 진군의 초마(硝馬)로 가장시켜 몽오 장군에게 달려가 품하게 했다.

“대왕께서 급서(急逝) 하셔서 군사를 거두어 가지고 급히 회군하시라는 전갈이옵니다.”하고 말하니 몽오 장군은 크게 놀라면서 사기가 갑자기 저하되었다.

그 기회를 이용하여 연합군이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니 진군은 형편없이 패주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연합군은 간단한 모략 하나로 대승을 거둘 수가 있었다.

몽오가 급히 남은 군사를 이끌고 회군하여 고국에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은 적의 모략이 아니었던가? 장양왕은 그 사실을 알고 이를 갈며 분노했다. “여섯 나라가 공동으로 덤벼 왔다면 이제부터 여섯 나라는 모두가 우리의 적이다. 나는 여섯 나라 모두를 모조리 정복하리라.”

그러나 장양왕은 그날부터 울화가 사무쳐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신릉군이 모략한 대로 왕위에 오른지 4년 반만에 어이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후일 최초의 천하 통일을 이룩한 진시황, 여불위의 아들인 태자 정이 등극하였으니 이때 신왕의 나이는 불과 13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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