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熱國誌) (17)

O 연(燕), 위(魏)의 멸망 진왕은 형가의 암살 미수사건으로 크게 노하여 조나라에 주둔중인 왕전 장군에게 20만 군사를 추가로 보내 주면서 연나라를 쳐서 귀족 양반들을 씨도 없이 죽여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왕전이 30만 대군을 휘몰아쳐 연으로 쳐들어가니 연군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진군과의 전투에서 연전 연패를 거듭한 연왕은 성문을 굳게 잠그게 하고, 비상 대책회의를 열었다. "진군의 기세가 막강하여 우리로서는 대항할 방도가 없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열국지(熱國誌) (16)

O 자객 형가(荊軻)나라가 잘 되려면 충신이 많아야 한다. 진나라에는 명장들이 수 없이 많았는데 그들 모두가 충신이어서 진이 강대국이 된 것도 그들의 덕택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한 사람의 예외가 있었으니 그는 명장 번어기(樊於期) 장군이었다. 번어기 장군은 성품이 강직하기 이를 데 없는 대쪽같이 곧은 무장인지라 평소에도 <아무리 대왕의 명령이라 하여도 무조건 복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시비비를 가림없이 무조건 복종만 한다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나 대왕을 위해서나 결코...

열국지(熱國誌) (15)

O 한(韓), 조(趙)의 멸망 노애의 반란 사건이 마무리 되자 진왕은 승상 이사를 불러 물었다. “그동안 내정(內政)이 어수선하여 천하를 통일하려던 사업이 지연 되었소. 이제 다시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여야 하겠는데 어느 나라부터 정복하는 것이 좋을지 경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소이다.” 이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는데 “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국력이 가장 약한 한나라를 먼저 쳐서 손쉬운 싸움에서 승리를 하게 되면 군사들의 사기도 높일 수 있으리라 사료 되옵니다.”...

열국지(熱國誌) (14)

O 여불위와 노애의 몰락 노복을 천 명씩이나 거느리고 태후 주희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 둘과 호화로운 영화를 누리고 있는 노애는 시간이 흐를수록 엉뚱한 욕심이 무럭무럭 끓어 올랐다. 그것은 기회를 보아 진왕을 쫒아내고 자기 아들을 그 자리에 올려 앉히고 싶은 야심이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아들을 형제나 두었으니 이제는 현왕을 쫒아내고, 우리들의 아이를 왕으로 내세워야 할 게 아닌가?" 노애의 입에서 이런 말이 노골적으로 나오게 되자 주희는 몸을 떨며 말했다. "그건 안...

열국지(熱國誌) (13)

O 간부(姦夫) 노애열세 살에 등극한 소년 정(政)이 열 아홉 살이 되자, 승상을 제쳐 놓고 국정을 직접 관장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권력의 직접 행사의 농도는 점점 심해지더니 이제는 승상조차 턱으로 가리키며 지시하는 오만한 독재자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천하를 통일하려는 집념은 날이 갈수록 강렬해져서 진나라 백성들은 노약(老若)을 막론하고 자나깨나 군사 훈련으로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절대 군주도 천재지변(天災地變) 앞에서는 속수 무책인고로 진왕 6년에...

열국지(熱國誌) (12)

"권력의 달콤함 때문에 후일 신세를 망치기 쉽다." 이 무렵 진나라는 전국칠웅(戰國七雄) 가운데 영토가 제일 넓었다. 북방 경계는 멀리 호령, 곡구(谷口)에 이르렀고, 남쪽으로는 양자강 지류인 경수(涇水)와 황하 상류인 위수(渭水)를 둘러싼 곡창 지대와 서쪽으로는 서촉(西蜀)의 태산 준령이 가로 막고 있어 천연의 요새가 되어 주었고, 동쪽으로는 함곡관(函谷關)과 효산(肴山)이 있어서 천혜의 난공불락(難功不落)의 성채가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는 쉬워도...

열국지(熱國誌) (11)

○ 여불위의 골치 아픈 존재 화창한 어느 봄날 진도(秦都) 함양(咸陽)에서 50리 쯤 떨어진 야외 넓은 들에서는 아침부터 난데없는 진조대전(秦趙大戰)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조나라를 가상의 적으로 하는 군사 훈련 이었지만 치열한 공방전은 실전을 방불케 하였다. 진군의 총사령관은 열다섯 살의 소년 왕 자신이었고, 조군의 총사령관 역에는 진나라의 명장인 몽오 장군이었다. 마상의 소년왕은 장검을 하늘 높이 치켜 들고 가상의 적진으로 달려나가며 "적을 섬멸할 때는 바로 이때다!...

열국지(熱國誌) 10

열국지(熱國誌) 10

○ 여불위(呂不韋)의 고민 장양왕이 급서(急逝) 하고, 후일 천하를 통일하는 진시황(秦始皇), 소년 정이 열세 살로 왕위에 오르게 되자 승상인 여불위가 국정을 전담하게 되었다.(나의 아들이 왕이 되었고, 태후인 주희는 나의 정부이고 보니 이제 진나라는 사실상 나의 나라다!) 사람 장사에 뜻을 두고 큰일을 도모한 지 14년, 여불위는 마침내 진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남편이 죽고 나자 주희의 애욕은 더욱 강렬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는 남편의 눈을 남모르게...

열국지(熱國誌) 9

열국지(熱國誌) 9

○ 지혜로운 사공자, 신릉군(信陵君) 초나라와 군사 동맹을 체결하고 나자 이번에는 위나라와 군사 동맹을 서둘러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평원군은 위나라와의 교섭을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유인즉, 위왕의 아우인 지혜로운 사공자중에 한사람인 신릉군은 위왕의 아우인 동시에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데다가 평원군의 손아래 동서가 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국적은 다르지만, 평원군이 신릉군의 고매한 인격에 매혹되어 자기 처제와 결혼을 시켰던 것이다. 평원군이...

열국지(熱國誌) 8

○ "지혜로운 사공자" 중에 한 사람 조나라 평원군(平原君) 조왕(趙王)은 진군에게 37개의 성을 빼앗긴 데다가 "명년 봄에 다시 쳐들어 오겠노라"는 통고까지 받고 나니 국가의 존망이 크게 걱정되었다. 그리하여 지혜로운 사공자로 불리는 현명한 아우인 <평원군>을 불러 상의한다. "진군이 명춘에 다시 쳐들어오겠다고 하고 돌아갔으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 평원군이 대답하는데, "우리의 힘 만으로는 진군을 당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똑같은...

열국지(熱國誌) 6

by | Mar 4, 2020 | Uncategorized, 열국지 | 0 comments

○ 진나라 소양왕의 이루지 못 한 꿈.

현왕(現王)인 진나라 소양왕은 (紹襄王)은 선천적으로 영웅의 기질을 타고난 호걸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꿈과 기상이 웅대하여 일찍이 19세에 왕위에 오르자 만조 백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폭탄 유시를 선포했던 일이 있었다.

“하늘에 태양이 둘이 있을 수 없듯이 지상에 왕이 여러 명이 있을 수 없는 일이오. 나는 이제부터 전국 육웅을 모조리 정벌하여 만천하를 모두 우리의 영토로 만들어 버릴 생각이니 경들은 나의 뜻을 받들어 전국 각지에 숨어 있는 양장(良將)과 현사(賢士)들을 널리 찾아 모셔 오도록 하오. 어느 나라 사람임을 막론하고, 나를 따라와 전공을 세우는 사람에게는 국가에서 융숭하게 대접할 것이오.”

늙은 중신들은 애송이 신왕의 무모해 보이는 선포에 입을 딱 벌어졌다.

그 당시의 국제 정세로 보아 전국 칠웅 중에서 진나라가 최대 강국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한(韓)과 연(燕) 같은 세력이 약한 국가는 논외로 치더라도 조(趙), 초(楚), 위(魏), 제(齊)나라 등 4개국은 진나라를 위협할 만큼의 세력과 지배 체계가 잡혀 있는 강국이었다.

그런데 그들 여섯 나라를 무슨 힘으로 모조리 정벌하여 천하를 하나로 통일을 한단 말인가. 그것은 말로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린 왕이 철이 없고 욕심이 많아도 유만부동이지 여섯 나라를 무슨 힘으로 송두리째 집어삼키겠다는 말인가?)
늙은 중신들은 하도 어처구니 없는 신왕의 말을 받아 아뢰었다.

“대왕 전하! 우리가 몇몇 나라와 힘을 합쳐서 한두 나라쯤 정벌한다면 모를까 우리의 힘만으로 여섯 나라를 모조리 정벌해 버리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 입니다.”

그러나 젊은 소양왕은 얼굴에 노기를 띠며 큰소리로 꾸짖었다. “경은 무슨 그런 못난 말씀을 하고 계시오. 남의 힘을 빌려 천하를 통일하려 하다가는 우리 자신이 그 나라의 밥이 되어 버릴 것이오.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만의 힘으로 천하를 통일하여야 하오. 노력하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란 있을 수 없는 법이오. 모든 중신들은 그런 각오로 나를 보필해 주시오.” 중신들은 더 이상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소양왕은 그로부터 양병(養兵)을 대대적으로 실현해 가면서 조금이라도 재주가 있는 사람은 높이 등용하였다.

소양왕이 인재를 높이 등용한다는 소문이 널리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 숨어 있던 인재들이 구름떼 처럼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용병술이 탁월한 백기(白起)라는 무장도 있었고, 행정 수완(行政手腕)이 비상한 <응후>라는 현사도 있었다.

소양왕은 응후를 전격적으로 승상으로 발탁하고, 백기를 대장으로 등용하여 천하 통일의 기초를 착착 다져 나갔다. 이렇게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을 파격적으로 등용하여 국가 요직을 맡기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이었지만 “내가 그를 믿고 앞장서 달려나가면 나를 따라오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리오!” 하고 말하며 소양왕은 무모할 정도로 대담한 인사 행정을 펴 나갔다.

사람을 알아보는 소양왕의 안목은 과연 탁월하여서 승상의 직책을 맡은 <응후>는 날이 갈수록 민생을 부유하게 해주었고, 군무를 전담한 <백기> 장군은 불과 몇 년 사이에 백만 진군(秦軍)을 막강한 대군으로 키워 놓았다.

“이만하면 육국을 정벌하고도 남을 만하니 이제부터는 육국을 차례로 잠식해 나가기로 합시다.”

소양왕 13년, 그는 마침내 백기 장군과 함께 50만 대군을 이끌고 한나라로 쳐들어가 13개 성시(城市)를 점령하며 24만명의 적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고, 이듬해에는 위(魏)나라로 쳐들어가 61개의 성시를 취하면서 적병 10만을 도살하였고, 다시 5년 후에는 조나라로 쳐들어가 광량성을 취하였다.

뿐만 아니라 다시 2년 후에는 초나라로 쳐들어가 도성인 영을 쑥밭으로 만들어 놓았고, 다시 5년 후에는 한,위,조 세나라를 차례로 쳐들어가 13만명의 적군을 살해하였다.

이러다 보니 전국 육웅(戰國六雄)에서는 <소양왕> 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고 이를 갈며 그를 <변방의 승냥이>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남이야 무슨 소리를 하든 간에 소양왕은 오로지 세력 확장에만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리하여 소양왕 48년에는 육국의 영토중 3분에 1을 점할 정도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그러나 뻗어 가는 힘에도 한계가 있었던지 욱일승천으로 확장해가던 진나라의 기세가 생각지 않았던 좌절을 맛보게 되었으니 그것은 승상 <응후>와 <백기>가 세력 싸움으로 불화를 일으켜 천하의 명장이던 <백기>장군이 억울하게도 비명으로 죽게 된 것이었다.

백기 장군의 비명 횡사는 승승장구해 오던 진나라에는 치명적인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왕손 자초가 적국인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가는 불상사까지 발생하였다.

이에 진나라의 침략에 번번히 당하고 있던 여섯 나라는 공동 보조를 취해 오면서 “진이 어느 나라든 침범하기만 하면 왕손 자초를 그날로 죽여 버릴 테니 그리 알고 있으라” 하는 통고문까지 보내 오지 않았던가.

<아아, 그렇다면 나는 천하를 통일할 수 없는 천운을 타고 났더란 말인가! >

소양왕은 장탄식을 하며 7년 동안이나 허송 세월을 보내다가 마침내 몸에 병이 들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었는데 때마침 태자 안국군이 들어오더니,

“대왕 전하!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던 자초가 어젯밤에 탈출하여 돌아왔사옵니다.” 하고 아뢰는 것이 아닌가.

“뭐야? 자초가 탈출해 돌아왔다구! 그 애를 당장 이리 불러 오너라.” 소양왕은 병석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외쳤다.

태자 안국군은 자초가 탈출하여 돌아오게 된 경위와 장가까지 들어 손자를 데리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소양왕에게 자세히 설명해 드리고 나서 자초의 세 식구와 여불위를 모두 어전으로 불러 들였다. 소양왕은 자초의 손을 움켜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너를 살아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구나. 이 할애비가 이제 부터라도 너의 원수를 꼭 갚고야 말리라.”

그리고 이번에는 주희 옆에 서 있는 소년 정의 손을 끌어 당기며 물었다. “이 아이가 바로 나의 증손자인 네 아들이냐 ?”

그러자 여섯 살짜리 소년 정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소양왕 앞에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리며 “할아버님마마! 저는 아바마마와 함께 조나라를 탈출해 돌아온 정이옵니다. 위대하신 할아버님마마를 뵙게 되어 무척 기쁘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도 어른스러운 인사에 좌중은 크게 경탄하였다. “오오, 네가 내 증손자냐. 무던히도 숙성하구나. 얼마나 잘생겼는지, 어디 얼굴을 똑바로 보여라.”

소양왕은 소년 정을 무릎에 앉히고 이목구비를 요모조모로 뜯어보다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안국군과 자초에게 말했다.

“내가 상(相)을 좀 볼 줄 아는데 이 아이의 기상은 장차 나의 뜻을 이어 천하를 통일할 천자의 기상이 분명하구나 “

소년 정이 소양왕의 말을 받아서 다시 대답했다. “할아버님마마께서 못다 하신 일이 계시오면 제가 자라서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바람에 좌중에는 폭소가 터졌다.

그러자 소양왕은 엄숙한 표정으로 좌중을 꾸짖었다. “웃지들 마라, 국가의 흥망을 논하는 이 마당에 어찌 웃음을 웃느냐.” 그리고 안국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솔직히 너는 성품이 나약한 데다가 체질초차 포류질(浦柳質 : 물가의 버드나무) 이어서 나는 네게 대해서는 천하 통일의 기대를 갖지 못했다. 내가 죽고 나면 네가 왕위에 오르겠지만 네게는 나라를 지켜나가는 일만 해도 힘에 겨울 것이다. 나는 그 점을 내심으로 무척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아이를 만나 보니 이제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겠다.”

방안은 갑자기 숙연한 공기가 감들었다.

소양왕은 어린 증손자의 얼굴을 다시 뜯어보며 넋두리 처럼 말했다. “정아 ! 이 할애비는 통일 천하의 웅지를 품고 50여 년간이나 동분서주 하면서도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그러니 너는 할애비의 웅지를 이어 받아서 네 대에 가서는 천하를 통일하도록 하여라.”
“할바마마, 명심하겠습니다.” 소양왕은 어린 손자의 대답을 듣고 무언의 눈물을 흘렸다.

소양왕은 어린 손자를 상대로 자신의 회한과 포부를 한바탕 늘어놓고 나서, 이번에는 여불위를 돌아다 보며 말했다.

“자초가 귀공의 덕택으로 조나라에서 무사히 탈출해 돌아오게 되었으니 귀공의 은공은 이루 말할 길이 없구려. 귀공은 우리나라에서 길이 머물러 살면서 <동궁 국승(東宮局丞)>의 벼슬을 맡아 보아 주기 바라오.”

동궁 국승이란, 태자의 교육을 맡아 보는 중요한 자리인데 조나라에 있을 때부터 자초 부자를 지도해 왔다고 해서 그런 직책을 맡긴 것이었다.

“홍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런데 귀공에게는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귀공은 관상학상으로도 결코 범상한 인물은 아니오. 귀공에게 동궁 국승을 제수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니 귀공은 정을 특별히 위대한 인물로 키워 주기 바라오. 이 아이는 후일에 천하를 통일할 귀중한 인물이니까 말이오.”

“지엄하신 분부, 거듭 명심하겠사옵니다.”

여불위는 허리를 숙여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또 한 번 웃었다.

(정은 영감의 손자가 아니고 바로 나의 아들이오. 이 애가 장차 천하를 통일하게 되면 그 나라는 진나라가 아니고, 내 아들의 나라가 될 것이오.)

어찌되었건 여불위는 그날부터 세자궁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왕손비(王孫妃)인 주희와도 마음대로 밀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 간의 불륜 관계가 탄로나게 되면 엄청난 파국이 올 것 같아 여불위는 되도록 주희와의 밀회를 피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주희는 워낙 음욕이 무섭게 강한 계집인 데다가 남편 자초에 대한 잠자리의 불만도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여불위와 단둘이 만나기만 하면 체면 불구하고 동침을 요구해 왔다.

어느 날 여불위는 마지못해 주희의 요구를 들어주며 한바탕 열을 올리는 와중에 이렇게 말을 했다.

“이것아! 우리가 이렇게 자주 만나다가 탄로가 나게 되면 목이 날아갈 판인데 너는 그것도 모르고 시도 때도 없이 조르느냐 “

그쯤으로 엄포를 하면 응당 겁을 집어먹을 줄 알았다. 그러나 주희는 그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죽는 한이 있어도 당장 못 견디겠는데 어떡해요.”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다. 이제부터는 만나 주지 않을테니 그리 알아라! ” “그건 안돼요! 세자비의 명령을 동궁 국승이 거역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누가 뭐래도 그것만은 안되요! 처음 약속과 다르지 않아요?”

실로 찰거머리 같아서 떼어 내기가 무척 어려운 계집이었다.

한편, 소양왕은 자초가 탈출해 돌아온 지 며칠 후에 대장 <장한>을 불러 명했다.

“경도 잘 알고 있다시피 육국을 정벌하여 만천하를 진나라로 통일하려는 것은 나의 70 평생의 숙원이었소. 그러나 불행하게도 백기 장군이 죽은 데다가 손자 아이가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소.

그러나 이제 자초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이제는 조나라에 복수를 해야 하겠소. 경에게 군사 20만을 줄 테니 조나라를 당장 정벌하시오. 내가 몸에 병이 깊어서 생전에 천하를 통일하기가 어려울 것 같지만 적어도 조나라 하나만이라도 정벌해야 하겠소.”

천하 통일에 대한 소양왕의 집념은 병석에서도 강렬하였다. 장한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즉시 조나라 정벌의 장도에 올랐다.

진나라의 군사력은 천하 통일을 꿈꿀 정도로 막강한데다가 총사령관인 장한은 천하의 명장이었다.

장한은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며 원정길에 오른지 두 달만에 조나라의 20여 성을 점령하고 드디어 조나라의 국도인 한단성에 육박하였다.

조왕은 크게 당황하여 대장 공손건을 불러 명했다.

“오늘날 우리가 진에게 침략을 당하게 된 것은 오로지 경이 자초를 탈출시켰기 때문이오. 적은 지금 우리의 도성으로 쇄도해 오고 있으니 경은 죽음을 각오하고 적을 막아내시오.”

공손건은 이미 저지른 죄가 있는지라 10만 대군을 이끌고 진군을 막아내려고 출진하였다.

그러나 공손건은 지난번에 장한과 단둘이 싸워서 패한 경험이 있는지라 승리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니 싸울 수도 없어서 진군의 군진 앞으로 달려 나가 결사적으로 싸우려고 하는데 장한이 마주 나오며 큰소리로 야유한다.

“그대는 지난번에 싸웠던 공손건이 아닌가? 대장부의 승부는 한번으로 족하거늘 이제 무슨 낯짝을 들고 또다시 싸우려고 하는가! “

공손건은 지독한 야유에 약이 올라 군사를 일거에 노도와 같이 휘몰아쳐 나갔다. 그러나 워낙에 강약의 차이가 심하므로 공손건이 30여 합을 싸우는 동안에 9만여 군사를 잃었다.

크게 당황한 공손건은 마침내 장한에게 덤벼 들었으나 장한은 공손건을 한칼에 베어 버렸다. 이로써 진군이 대승을 거두고 마지막으로 한단성에 총공격을 퍼부으려고 하는데 별안간 고국에서 급보가 날아들었다.

“대왕께서 위독하시니 군사를 거두어 가지고 즉시 회군하라!” 장한은 원통해 했지만 군령에 따라 회군할 밖에 없었다.

장한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국에 돌아왔을 때에는 소양왕은 이미 임종이 임박하여 태자 안국군과 모든 중신들이 병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여불위도 참석해 있었다.

소양왕은 목숨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호흡이 몹시 가쁘더니 문득 눈을 뜨며 태자에게 말한다.

“정은 어디 갔느냐. 정을 이리 불러 오너라.”

주희가 정을 데리고 베겟머리에 대령하자 소양왕은 어린 손자의 손을 움켜잡고 띄엄띄엄 말했다.

“너는 대왕의 기상을 타고난 인물임이 분명하다. 너는 이 할애비의 뜻을 이어받아 기필코 천하를 통일하도록 하여라. 우리 가문에서 천하를 통일할 인물은 너밖에 없다.”

그리고 베게 밑에 넣어 두었던 유서를 꺼내어 정에게 펼쳐 보라며 말했다.

“너는 글을 읽을 줄 알렸다? 그것을 네가 직접 읽어 보아라.”

소년 정은 증조 할아버지의 유서를 스스럼없이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하늘에 태양이 하나밖에 없듯이 땅에도 임금은 두 사람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너 정은 증조부인 나의 웅지를 이어받아 육국을 모조리 정벌하여 만천하를 하나로 통일하여라.”

진실로 소양왕이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웅장한 유언이었다.

소양왕은 소년의 손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정아! 너는 그 글이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알겠느냐? ” “대왕 할아버님마마! 알겠나이다. 제가 할아버님 뜻을 받들어 기필코 천하를 통일 하겠습니다.” “고맙다! 그와 같은 원대한 포부를 달성하기 위해 너는 오늘부터 하루도 빼지말고 그 글을 하루에 백 번씩만 읽어 보도록 하여라.” “대왕마마의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오오! 기특한지고 내가 이제야 눈을 감고 죽을 수 있겠구나 …..”

말을 마친 소양왕은 얼굴에 환희의 빛을 띠더니 그대로 숨을 거두어 버렸다.

소양왕 재위 56년, 천하를 통일하려는 위대한 꿈을 품고 70 평생을 전운 속에서 활약해 왔지만 그의 웅지는 이쯤에서 좌절되어 버리고 말았다.

여불위는 소양왕의 최후를 지켜보며 형용하기 어려운 감동을 받았다.

(소양왕은 거성(巨星)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나는 내 아들 정을 그보다도 훨씬 위대한 대왕으로 만들어 놓을 테니 두고 보시오)

왕이 죽자 중신들은 모두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그러나 소년 정만은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아니하고 여불위에게 당돌하게 명령조로 말했다.

“동궁 국승은 나를 세자궁으로 모시고 가 주시오.”

여불위는 그 명령을 듣는 순간 정은 자기 아들이면서도 이미 아들의 한계를 벗어난 것 같아 가슴이 서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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