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熱國誌) (17)

O 연(燕), 위(魏)의 멸망 진왕은 형가의 암살 미수사건으로 크게 노하여 조나라에 주둔중인 왕전 장군에게 20만 군사를 추가로 보내 주면서 연나라를 쳐서 귀족 양반들을 씨도 없이 죽여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왕전이 30만 대군을 휘몰아쳐 연으로 쳐들어가니 연군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진군과의 전투에서 연전 연패를 거듭한 연왕은 성문을 굳게 잠그게 하고, 비상 대책회의를 열었다. "진군의 기세가 막강하여 우리로서는 대항할 방도가 없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열국지(熱國誌) (16)

O 자객 형가(荊軻)나라가 잘 되려면 충신이 많아야 한다. 진나라에는 명장들이 수 없이 많았는데 그들 모두가 충신이어서 진이 강대국이 된 것도 그들의 덕택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한 사람의 예외가 있었으니 그는 명장 번어기(樊於期) 장군이었다. 번어기 장군은 성품이 강직하기 이를 데 없는 대쪽같이 곧은 무장인지라 평소에도 <아무리 대왕의 명령이라 하여도 무조건 복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시비비를 가림없이 무조건 복종만 한다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나 대왕을 위해서나 결코...

열국지(熱國誌) (14)

O 여불위와 노애의 몰락 노복을 천 명씩이나 거느리고 태후 주희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 둘과 호화로운 영화를 누리고 있는 노애는 시간이 흐를수록 엉뚱한 욕심이 무럭무럭 끓어 올랐다. 그것은 기회를 보아 진왕을 쫒아내고 자기 아들을 그 자리에 올려 앉히고 싶은 야심이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아들을 형제나 두었으니 이제는 현왕을 쫒아내고, 우리들의 아이를 왕으로 내세워야 할 게 아닌가?" 노애의 입에서 이런 말이 노골적으로 나오게 되자 주희는 몸을 떨며 말했다. "그건 안...

열국지(熱國誌) (13)

O 간부(姦夫) 노애열세 살에 등극한 소년 정(政)이 열 아홉 살이 되자, 승상을 제쳐 놓고 국정을 직접 관장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권력의 직접 행사의 농도는 점점 심해지더니 이제는 승상조차 턱으로 가리키며 지시하는 오만한 독재자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천하를 통일하려는 집념은 날이 갈수록 강렬해져서 진나라 백성들은 노약(老若)을 막론하고 자나깨나 군사 훈련으로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절대 군주도 천재지변(天災地變) 앞에서는 속수 무책인고로 진왕 6년에...

열국지(熱國誌) (12)

"권력의 달콤함 때문에 후일 신세를 망치기 쉽다." 이 무렵 진나라는 전국칠웅(戰國七雄) 가운데 영토가 제일 넓었다. 북방 경계는 멀리 호령, 곡구(谷口)에 이르렀고, 남쪽으로는 양자강 지류인 경수(涇水)와 황하 상류인 위수(渭水)를 둘러싼 곡창 지대와 서쪽으로는 서촉(西蜀)의 태산 준령이 가로 막고 있어 천연의 요새가 되어 주었고, 동쪽으로는 함곡관(函谷關)과 효산(肴山)이 있어서 천혜의 난공불락(難功不落)의 성채가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는 쉬워도...

열국지(熱國誌) (11)

○ 여불위의 골치 아픈 존재 화창한 어느 봄날 진도(秦都) 함양(咸陽)에서 50리 쯤 떨어진 야외 넓은 들에서는 아침부터 난데없는 진조대전(秦趙大戰)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조나라를 가상의 적으로 하는 군사 훈련 이었지만 치열한 공방전은 실전을 방불케 하였다. 진군의 총사령관은 열다섯 살의 소년 왕 자신이었고, 조군의 총사령관 역에는 진나라의 명장인 몽오 장군이었다. 마상의 소년왕은 장검을 하늘 높이 치켜 들고 가상의 적진으로 달려나가며 "적을 섬멸할 때는 바로 이때다!...

열국지(熱國誌) 10

열국지(熱國誌) 10

○ 여불위(呂不韋)의 고민 장양왕이 급서(急逝) 하고, 후일 천하를 통일하는 진시황(秦始皇), 소년 정이 열세 살로 왕위에 오르게 되자 승상인 여불위가 국정을 전담하게 되었다.(나의 아들이 왕이 되었고, 태후인 주희는 나의 정부이고 보니 이제 진나라는 사실상 나의 나라다!) 사람 장사에 뜻을 두고 큰일을 도모한 지 14년, 여불위는 마침내 진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남편이 죽고 나자 주희의 애욕은 더욱 강렬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는 남편의 눈을 남모르게...

열국지(熱國誌) 9

열국지(熱國誌) 9

○ 지혜로운 사공자, 신릉군(信陵君) 초나라와 군사 동맹을 체결하고 나자 이번에는 위나라와 군사 동맹을 서둘러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나 평원군은 위나라와의 교섭을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유인즉, 위왕의 아우인 지혜로운 사공자중에 한사람인 신릉군은 위왕의 아우인 동시에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데다가 평원군의 손아래 동서가 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국적은 다르지만, 평원군이 신릉군의 고매한 인격에 매혹되어 자기 처제와 결혼을 시켰던 것이다. 평원군이...

열국지(熱國誌) 8

○ "지혜로운 사공자" 중에 한 사람 조나라 평원군(平原君) 조왕(趙王)은 진군에게 37개의 성을 빼앗긴 데다가 "명년 봄에 다시 쳐들어 오겠노라"는 통고까지 받고 나니 국가의 존망이 크게 걱정되었다. 그리하여 지혜로운 사공자로 불리는 현명한 아우인 <평원군>을 불러 상의한다. "진군이 명춘에 다시 쳐들어오겠다고 하고 돌아갔으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 평원군이 대답하는데, "우리의 힘 만으로는 진군을 당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똑같은...

열국지(熱國誌) 7

○ 자초의 등극과 여불위의 출세... (여씨 춘추 발간의 유래) 소양왕이 서거하자 태자 안국군이 왕위에 올랐다. 그를 효문왕(孝文王)이라 칭했다. 안국군이 등극함에 따라 자초가 태자로 책립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여불위로 보면 득세(得勢)의 길이 순간적으로 환하게 트인 셈이었다. 그러나 행운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새로 등극한 효문왕이 건강이 워낙 좋지 않아서 왕위에 오른지 불과 사흘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다. 불과 사흘 사이에 두 명의 왕이 잇달아 서거한 것이었다....

열국지(熱國誌) (15)

by | Mar 16, 2020 | 아지트, 열국지 | 0 comments

O 한(韓), 조(趙)의 멸망

노애의 반란 사건이 마무리 되자 진왕은 승상 이사를 불러 물었다.

“그동안 내정(內政)이 어수선하여 천하를 통일하려던 사업이 지연 되었소. 이제 다시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여야 하겠는데 어느 나라부터 정복하는 것이 좋을지 경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소이다.” 이사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는데 “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국력이 가장 약한 한나라를 먼저 쳐서 손쉬운 싸움에서 승리를 하게 되면 군사들의 사기도 높일 수 있으리라 사료 되옵니다.”

진왕은 이사의 말을 옳게 여겨 왕전(王剪), 환기(桓奇), 양단화(楊端和)의 세 장수에게 각각 군사 10만씩을 주며 한을 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진이 한을 치러 출병했다는 소식을 듣자 한왕은 진과 인접해 있는 9개 성을 무조건 내주겠다는 아래와 같은 화친서(和親書)를 보냈다.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든 한은 진나라와 싸울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왕 전하, 본인은 전하께서 우리나라의 독립권만 인정해 주신다면 전하의 번신(藩臣)으로서 신하의 의무를 다할 것이오니 인접한 9개 성을 받으시고 진격을 멈추어 주실 것을 대왕전에 엎드려 간곡히 청원하나이다>

이른바 형식적인 국권만 인정해 주면 예속국이 되어도 무방하다는 사연이었다.

진왕은 화친서를 받아 보고 소리를 내어 크게 웃었다. “하하하, 한왕이란 자는 참으로 어리석기 짝없는 자로구나. 번신(藩臣)에게 어찌 국권이 용납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정작 한나라 사신을 만나서는 극진히 접대하면서 엉뚱한 말을 하였다. “한왕께서 우리와 화친을 도모하시겠다니 매우 고맙고도 현명하신 일이오. 우리가 일간 답사(答使)를 보낼 터인즉, 한왕께서 기꺼이 맞아 주시도록 전하시오.”

진왕은 한나라 사신을 돌려보낸 후, 내사(內史) 진승(秦勝)을 불러 명했다. “한나라는 싸우지 않고도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그대는 군사 5만을 데리고 한나라로 들어가 한왕을 즉시 체포하여 나에게 보내라. 그리고 한나라 영토를 <영천군(穎川郡)>으로 개명하여 그대를 군수로 임명하노니 잘 다스리도록 하라.”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교활한 진왕이었다.

한편 한왕은 화친사가 돌아와 “진왕은 대왕의 화친서를 받아 보시고, 매우 만족스러워 하셨습니다. 일간 답사를 보낸다 하오니 기꺼이 환대해 주시옵소서.” 하고 고하니 한왕은 어리석게도 어쩔 줄을 모르고 좋아하였다. “아아, 오늘 밤 부터는 다리를 뻗고 잘 수 있겠구나.” 그로부터 며칠 후, 진승이 5만 군사를 거느리고 찾아왔으나 한왕은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고 그를 맞이했다.

진승은 한왕을 만나기가 무섭게 그를 체포하여 왕족들과 그의 가솔(家率)들을 함양으로 보내 놓고, 자신은 영천군의 군수가 되었다.

이리하여 한은 나라를 일으킨지 10대 164년 만에 어처구니없게 멸망하였으니 이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안보 정신이 결여된 데 따른 것이었다.

한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나자 진왕은 축하연을 베푸는 자리에서 군신들에게 묻는다. “한을 완전히 정복했으니 이제는 나머지 다섯 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부터 정벌하는 것이 좋겠소?”

승상 이사가 대답한다. “조(趙)는 일찍이 선왕께서 볼모로 잡혀 가 계셨던 원수의 나라이옵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조를 쳐서 원수를 갚으심이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좋은 말씀이오. 그러면 이번에는 어느 장수가 조를 치겠소?” 그러자 대장 왕전이 출반주하며 아뢴다. “신이 비록 늙었사오나 어명을 내려 주시면 일거에 조를 정벌하고, 조왕의 수급(首級)을 어전에 헌상하여 대왕의 기쁨을 드리겠사옵니다.”

그러자 진왕이 크게 기뻐하며 왕전을 정조 원수(征趙元帥)로 임명하고, “군사는 얼마나 필요하오?” 하고 물었다. “10만 명만 주시면 50만 이라고 속여 가면서 기필코 승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면 우선 10만 병사를 드릴 테니 필요하거든 얼마든지 더 요구하시오.”

왕전은 10만 군사를 50만 명이라고 소문을 내가면서 조나라의 국도 한단성 부근에 진을 치고 진고를 울리며 기세를 크게 뽐내 보였다.

그러자 조왕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두려워 하며, 긴급 중신회의를 소집했다. “진장 왕전이 50만 대군을 이끌고 한단성 밖에 진을 치고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승상 이목(李牧)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대왕께서는 제(齊), 초(楚), 위(魏)에 지원을 요청하는 사신을 급히 보내셔야 하옵니다. 그리하여 연합군을 구성하여 싸우면 진군을 능히 격퇴할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자 태부(太夫) 곽계(郭啓)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큰소리로 반박하고 나섰다. “적군이 지금 당장 코 앞에 와있는데 어느 세월에 사람을 보내 지원군을 요청한단 말입니까? 오늘 같은 비상시국에 이처럼 한가한 대책을 말하다가는 나라의 멸망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목은 자기의 의견이 정면으로 반박 당하는 바람에 크게 노하여 곽계에게 삿대질을 해 가며 불 같은 호통을 질러댔다.”

“네 이놈! 네놈이 발칙스러워도 분수가 있지. 어전에서 어찌 감히 <나라가 망한다>는 말을 함부로 지껄이고 있느냐 ! …. 대왕 전하! 저 곽계란 놈은 역신(逆臣)이 분명하오니 저놈을 당장 처단해 주시옵소서.”

사태가 이렇게 험악해지고 보니 곽계도 잠자코 있지를 않았다. “누가 누구더러 역신이란 말씀이오. 적이 눈앞에 닥쳐와 있는 이 마당에 나가 싸울 생각은 아니 하고, 남의 힘이나 빌려 나라를 구하겠다는 사람이 충신이라면 이런 썩어빠진 충신이 무슨 필요란 말씀이오?”

이렇게 강적을 눈앞에 두고, 조나라 조정에서는 중신들 간에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과정을 살펴 보게 되면 이들의 논쟁은 나라를 구하기 위한 논쟁이라기 보다는 점차 개인의 명리를 위한 인신 공격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조왕은 중신들의 언쟁을 듣고, 한숨을 쉬며 탄식을 했다. “아아, 평원군(平原君)이 살아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그가 죽고 나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구나! 국론이 이렇게 분열되어 있으니 이 나라를 과연 누가 지켜 줄 것인가!”

그것은 사실이었다. 평원군은 식객을 3천 명이나 거느리고 있으면서 그가 승상 자리에 앉아 있을 때에는 진나라도 조나라를 함부로 업신여기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백성들이 평원군을 존경하며 똘똘 뭉쳐 있어서, 매사에 지혜로운 그의 명령이라면 백성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를 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평원군이 1년 전에 죽고, 이목이 승상의 자리에 오르자 국가의 기강이 급격히 어지럽게 되었다. 이목은 국리민복(國利民福) 따위는 생각조차 아니 하고, 오로지 개인의 영화에만 급급해 국정을 이용해 왔으므로 백성들이 그를 따를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올바른 지도자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알 수가 있는 일이다.

조왕은 긴 한숨을 쉬며 이목에게 물었다. “우리가 요청하면 초나 위가 지원군을 쉽게 보내 줄 것 같기는 하오?” “물론입니다. 우리가 요청하면 그들이 지원군을 보내 줄 것은 틀림 없는 일이옵니다.”

그러나 태부 곽계는 그 말에도 반대를 하고 나섰다. “대왕 전하! 소신은 승상의 그 말씀도 믿을 수가 없사옵니다. 평원군께서 승상으로 계셨다면 위(魏)의 신릉군(信陵君)이나 초(楚)의 춘신군(春申君) 같은 분들과 의기상투(義氣相投) 하는 바가 있어서 지원군을 보내 주실 것이옵니다. 그러나 평원군께서 이미 세상을 떠나셨으니 그들이 누구를 믿고 지원군을 보내 줄 것 이옵니까?”

그야말로 이목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모욕적인 말이었다. 그러자 이목은 전신을 후들후들 떨며 곽계에게 또다시 호통을 질러댔다.

“네 이놈! 네 놈이 나를 모욕해도 분수가 있지, 내 앞에서 어찌 이런 모욕적인 말을 함부로 씨부려 대느냐 ….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저놈을 당장 밖으로 끌어내어 목을 쳐라!”

그러나 곽계는 추호도 굽힘없이 “이 몸은 이미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으니 나라를 위한 말씀이라면 무엇을 가리리오?” “이놈아! 아직도 아가리를 닥치지 못 하겠느냐 …! 저놈을 왜 당장 끌어내지 않느냐 …!”

일국의 제왕 앞에서 감히 있을 수 없는 극단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것도 최고 통치자의 무능에서 비롯된 분란이라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조왕은 두사람의 논쟁을 말리기라도 하는 듯, 두 손으로 허공을 짓눌러 보이며 말했다. “나라를 위한 논쟁이니 고맙기는 하지만 너무 흥분하지 말고 조용히들 상의 합시다. 국론이 이렇게 분분해 가지고서야 목전의 국난을 어찌 타개해 나갈 수 있겠소. 남에게 지원군을 청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 같으니 곽 태부의 말씀대로 우리 힘으로 타개할 방도를 찾는 것이 급한 일이 될 것 같소.”

승상 이목이 다시 말한다. “우리만의 힘으로 진군을 막아내려는 것은 달걀로 바위를 깨뜨리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옵니다. 더구나 적장 왕전은 천하의 명장이온데 우리의 힘으로 그를 어찌 막아낼 수 있으오리까. 아무리 급해도 남의 힘을 빌려야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럴까요 ?”

최후의 영단을 신속히 내려야 할 조왕 스스로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으니 나라 꼴이 제대로 될리가 만무하였다.

곽계는 결단력 없는 왕의 태도를 보고 너무도 한심스러워서 눈물을 흘리며 이목에게 “여보시오, 승상!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와 주신다고 하였소. 싸워 보지도 않고 앉아서 망하자는 말씀을 어떻게 하시오? 당신 같은 패배주의자가 국록을 먹어 가며 국사를 좌지우지해 왔으니 이 나라가 이지경이 된 것이오. 새도 죽을 때에는 <짹> 소리를 지른다고 하는데 2백 년 사직이 망해가는 이 판국에 어찌 남의 힘에 의지하여 싸움을 피하자는 말이오?”

조왕은 그 말에 감동을 받았는지 곽계에게 묻는다. “우리가 총력을 기울여 싸우면 승산은 있겠소?” “국운이 경각에 달려 있는 이 판국에 어찌 승부를 예상하며 싸울 것입니까. 질 때 지더라도 싸울 수 있는 데까지 싸워야 할 것이옵니다. 이대로 앉아서 망한다면 천추(千秋)에 조소거리가 될 것이오니 대왕께서는 조속히 결단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고 왕의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 이런 말을 덛붙였다. “오늘 밤 야음을 기해 기습을 감행하면 승리할 가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옵니다.”

곽계는 진과 싸워 보았자 승리할 가망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라가 망해가는 판국에, 어찌 싸워 보지도 아니하고 망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기에 그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기를 주장했을 뿐이었다.

조왕은 그제서야 용기를 얻었는지 “그러면 싸우기로 할 터이니 경이 앞장을 서 주시오.” 하고 명한다.

곽계는 어전을 물러 나오면서 또 한 번 탄식을 한다. “용장지하(勇將之下)에 약졸이 없다고 했는데, 일국의 통치자가 저렇듯 우유부단해 가지고서야 어찌 나라를 지탱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아아, 조나라는 기어코 망하게 되었구나 ….. )

태부 곽계는 왕명을 받기가 무섭게 모든 군사를 2대로 나눠 가지고, 그날 밤 삼경(三更)에 적진을 기습하기로 하였다. 승리를 기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앉아서 망할 수는 없었기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려는 비정한 출정이었다.

한편, 진장 왕전은 그날 밤 초저녁에 중군(中軍)에 정좌하고 앉아서 점을 쳐 보니 놀랍게도 삼형풍(三刑風)의 점괘(占卦)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적에게 야간 기습을 당하게 되리라>는 점괘였다. 왕전은 그 점괘가 나오자 모든 장수들에게 긴급 소집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급히 모여 든 장수들에게 작전 명령을 내렸다.

“오늘 밤에 적은 우리 진영에 기습을 감행해 오리라. 그러니 우리는 8만 군사를 2만 명씩 4대로 나눠 가지고, 2대는 한단성 부근에 잠복해 있다가 적이 성을 나오거든 그 틈을 타서 성안으로 노도와 같이 몰려 들어가 성을 점령하는 동시에 조왕을 생포하라.

그리고 2대는 본진을 비워 놓은 채 그 부근에 잠복해 있다가 적이 내습을 해오거든 포성(砲聲)을 신호로 일제히 들고 일어나 일거에 적을 섬멸시켜 버려라. 나는 2만 군사를 거느리고 후방을 지키고 있다가 도망가는 적을 모조리 죽여 없앨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곽계가 군사를 몰고 적진으로 달려나가자 진군은 그 틈에 성안으로 몰려 들어가 한단성을 힘들이지 않고 점령해 버렸다. 그리고 대궐로 쳐들어가 조왕을 간단히 생포해 버렸다.

곽계는 한단성이 함락된 줄도 모르고 군사들을 독려하여 어둠을 뚫고 적진을 기습했다. 그러나 정작 적진 속으로 돌입해 보니 적은 하나도 보이지를 않았다. “앗차! 속았구나. 그렇다면 빨리 회군하여 성을 지켜야 하겠다.” 곽계는 크게 당황하여 군사를 이끌고 본성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돌연 어둠 속에서 일발의 포성이 울리더니 진군이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을 울리며 전후 좌우에서 노도와 같이 엄습해 오는 것이 아닌가? 곽계는 장검을 높이 치켜 들고 선두로 달려나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싸움은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싸움이다. 모든 장졸은 목숨을 걸고 적을 무찔러라!”

그리고 자기 자신부터 장검을 번개 치듯 휘두르며 적진 속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러나 장졸들은 겁에 질려서 곽계를 따라오기는 커녕 도망칠 구멍을 찾기에 우왕좌왕 하는 것이었다. 곽계는 적진 속에서 장검을 정신없이 휘둘러대고 있는데 그는 이미 자기 정신이 아니었다.

심복 부하 열명만이 곽계와 함께 싸우며 곽계에게 큰소리로 간한다. “장군님! 장졸들은 모두 도망을 가고 싸우는 사람은 우리들 뿐이옵니다. 승리할 가망이 없으니 우리도 후퇴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곽계는 여전히 미친 사람처럼 장검을 휘두르고 돌아가며 심복 부하들에게 대답한다.

“나는 죽으려고 싸우는 것이지 이기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나라가 망하는 판국에 내가 이제 무슨 낯짝으로 살기를 바라겠느냐. 너희들은 불쌍하니 너희들만이라도 지금 당장 도망을 가거라. 나의 마지막 명령이다.”

그러나 곽계의 심복 부하들은 한 명도 도망가지 아니하고 끝까지 함께 싸우다가 마침내 피투성이가 되어 곽계와 함께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리하여 조나라는 개국한 지 11대 182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조나라를 완전히 점령하였다는 승전 보고를 받은 진왕 정(政)은 크게 기뻐하며 곧 승상 이사와 대사 조고를 대동하고 달려와 한단성에 정식으로 입성하였다.

이때 왕전은 진왕의 행차를 맞아 조나라 백성들로 하여금 땅에 엎드려 진왕을 영접하게 하였는데 땅에 엎드린 행렬이 무려 3백 리가 넘도록 길었다.

조나라 백성들은 어제까지도 당당한 독립 국가의 백성이었지만 나라를 잃음과 동시에 진나라의 노예로 전락해 버렸으니 나라의 소중함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진왕은 한단성에 입성하자 일찍이 장양왕이 볼모로 잡혀 와 있었을 때에 그를 핍박했던 무리와 그들의 삼족들을 모조리 색출하여 토갱(土坑) 속에 생매장을 시켜 버렸는데 이때 죽은 사람은 무려 3만 여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나라의 태부 곽계는 나라를 지키려고 최후까지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진왕은 크게 감동되어 “조나라는 망했으되 곽계만은 만고의 충신이었으니 그의 시체를 융숭하게 장사지내 주고 사당을 별도로 세워서 모든 백성들의 귀감이 되게 하라.” 하고 특별한 명을 내렸다.

그리고 진왕은 승상 이사에게 물었다. “조나라는 평정해 버렸지만 아직도 네 나라가 남았으니 이제는 어느 나라를 치는 것이 좋겠소?” 이사가 대답을 하는데 “다음은 위와 연의 순서가 되겠습니다만 그에 앞서서 긴급히 제정해야 할 법령이 있사옵니다.” “그것이 무슨 법령이오?” “남아 있는 강국들을 모조리 평정하려면 많은 군사가 필요하므로 우리 관할의 모든 남자들에게 일정 기간 군역(軍役)을 지우게 하는 징병제를 실시하여야 하옵니다.” “좋은 생각이오. 그러면 그 법령을 곧 제정하도록 하시오.”

이리하여 징병 제도를 새로 실시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인류 역사상 징병 제도의 효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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